한국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
무한 경쟁, 무한 비교
한국 사람들은 무한 경쟁하고, 무한 비교한다.
경쟁의 대상은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위’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나아져야 하고, 옆집 철수보단 내가 잘나야 된다.
정해진 정답
삶에 정답이 정해져 있고 모두가 하나의 ‘좋은’정답을 향해 달린다.
학생은 ‘좋은’대학교 가야 하고,
대학생은 학점 잘 받고 ‘좋은’직업을 가져야 하고
직장인은 돈 착실히 모아 ‘좋은’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중년이 되었으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좋은’아파트에 살아야
비로소 ‘좋은’인생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이 모두에게 똑같이 정해진 정답이라는 점이다.
‘좋은’대학 → SKY
‘좋은’직업(직장) → 대기업
‘좋은’배우자 → 남들 보기에 좋은 배우자 (비혼, 딩크 X)
‘좋은’아파트 → 비싸고 넓은 아파트
‘좋은’인생 → 위에 있는 것들을 합한 것
하지만 결국 저 정답을 모두 맞출 수 있는 사람은 극극극소수에 불과하다.
대학이랑 직장으로만 따져도
SKY 다니는 사람은 전체 대학생의 2%이며, 대기업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4%에 불과하다.
이것저것 하면 정답만 맞추며 살아온 사람은 100명 중 1명도 안 남는다.
99명은 패배자, 즉 도태된다.
자녀에게 이어지는 불행
요즘 취업이 늦다고 하지만
30살 정도 되면 어느정도 학업이 마무리되고,
40살 정도 되면 커리어가 정해진다.
나이를 먹으면 내가 ‘정답’을 몇 개나 맞췄냐는 어느 정도 정해진 상황이 되는데, 다음 과제가 ‘자녀’가 된다. 때문에 자녀를 상승시키려고 한다.
나는 부끄럽게 돈을 벌었지만 자식에게는 명예까지 있는 업을 주고 싶어 하는 부모.
나는 이름 모를 대학 나왔지만 자식은 내로라하는 대학과 직업을 주고 싶어 하는 부모.
여기에 자식이 좀 더 크면 ‘좋은’결혼을 위해 입대는 부모도 적지 않다.
내가 못한 걸 자녀보고 하라는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다. 욕심이 과도한 경우 부모 자신을 갈아넣어 다음 과제를 완수하려 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핏줄’을 중시하는 동양권 문화랑도 연관이 있는데, 자녀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습성이 있다. 자녀와 내가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불행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