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g Counter

지인 중

초 대기업은 아니지만

블라인드에 이름 나오고 정년이 보장되는 나름 건실한 기업에 다니는 남자가 있다.

외모, 학력, 집안, 성격 등의 요소도 특별히 내세울 만큼 잘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 평균에서 크게 뒤떨어지거나 흠이 될 만한 요소도 없다. 근데 자기보다 잘나거나 비슷한 급 직장 다니는 여자도 아니고 무직백수 동갑내기한테도 까이는 것 같더라.

(외모는 여자 쪽이 확실히 낫기는 했음. 와꾸도 스펙이긴 하지.)

소개팅이 1대1 스펙 대결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도 나이 먹었으면 대충 '급'이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나름 돈도 모으고 직업도 보통 이상인 남자가 아무것도 없는 여자들에게마저 무한으로 까이는 게 이해가 안 됐음. 반대로 이 사람이 동일 스펙 동일 눈높이의 여자였으면 진작에 누구랑 성사가 됐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들은 진짜 주제파악을 못 하나?

솔직히 나는 ‘여자들이 주제파악을 못 한다’

는 말에 대해 평소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는데

이번에 진정으로 ‘여성들의 자기객관화’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됐다.

일단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나쁜 말을 잘 안하거나 순화하는 습성이 있다. ‘언니 예뻐요.’라는 말이 마치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자.’는 인삿말과 같다는 밈이 돌기도 했었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님.

근데 여자들이 입으로는 ‘너 너무 예쁘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검열’측면에서 남자보다 훨씬 빡셈.

출처 : https://www.womanc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477

그래서 나는 여자들이 자기객관화가 덜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결혼을 바라보는 여성/남성 집단의 차이

일반적으로, 결혼식에 집착하거나 크게 하기를 바라는 쪽이 여자다, 신혼여행을 멀리~ 자랑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도 여자.

단지 여자들이 사치스러워서일까? 뭐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지. 호캉스 여자들이 더 많이 하고, 오마카세 여자들이 더 많이 먹으러 다니고. 전반적으로 ‘소확행으로 인생 즐기기’는 여자들 쪽에서 훨씬 빠르고 강하다.

그렇지만 결혼식에 대해 여자들이 이런 비 이성적인 스탠스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내가 어떤 결혼을 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함.

여성 집단에서는 ‘어떤 결혼을 했는지’에 대해서 주변인들에게 고지를 하고 평가를 받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이 남성 집단에서는 덜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 집단에서조차 ‘여자가 어떤 결혼을 했는지’를 ‘남자가 어떤 결혼을 했는지’보다 더 유심히 쳐다보는 것도 있음.

이 증명은 기본적으로 애인이 있는 사람은 모두 거치고, 결혼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심해짐. 남자는 이래야 되니 저래야 되니. 결혼식은 어쩌구 저쩌구. ‘어떤 인간과 결혼을 할 것인지’ ‘어떤 결혼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ㅈㄴ게 물어본다. 거기에 웨딩 플래너는 ‘하나뿐인 결혼’ ‘신부가 주인공’ 이딴 소리나 해 대고, 이 과정에서 예비신부 눈깔이 돌아 버리는 것임.

의외로 여자들은 짝이 없는 미혼에게 오지랖을 부리거나 스트레스 주지 않는다. 에지간하면 ‘애인 없어? 글쿤.’임. 증명은 오로지 ‘짝이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임. 링 위에 올라오지 않은 사람에게 싸움 걸지 않음.

근데 남자들은 반대로 짝이 있는 사람은 퀘스트를 깬(깰)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터치를 하지 않고, 짝이 없는 미혼에게 오지랖이 오짐. 지인이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생각보다 엄청 의식함. 하다못해 막 곤충 유튜브 같은 거 보면 남자들이 ‘벌레도 여자친구가 있는데…’ 이딴 댓글 쳐달고 다님. 김사랑, 정우성 같은 잘난 남녀가 미혼인 이유를 여자들은 별로 안 궁금해 하는데 남자들은 궁금해 함. 반대로 만약 김사랑, 정우성이 결혼을 한다고 하면 그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더 궁금해 함.

결론을 말하면 ‘어떤 결혼을 했는지’에 대한 증명은 여성 집단이 빡세고 ‘결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증명은 남성 집단이 더 빡세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자들의 하향혼이 힘들다. 현실적인 어려움 차치하고, ‘너보다 못한 놈을 만나는 이유’를 바탕으로 ‘어떤 결혼을 했는지’를 더 빡세게 증명해야 함. 차라리 혼자일 때는 아무도 안 건드리는데 말이다. 남자들은 애인 없는 놈은 놀리지만 애인이 너보다 구리다고 주변에서 오지랖을 놓는 경우는 잘 없음.

여하간에 미비혼에 대한 터치가 줄어들고 ‘혼자 사는 삶’의 질이 꽤 올라간 지금, 여자들은 굳이 증명을 할 수 없는 남자를 만나서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위로부터 오지랖 및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결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미비혼에 대한 터치가 줄어든 건 남자 쪽도 마찬가지겠지만, 기본적으로 남성 집단에서는 결혼을 하면 일단 1차 승리자로 쳐 주는데 여자들은 결혼한다고 하면 그때부터가 테스트 시작임. 내가 봤을 때는 이게 남자들이 말하는 ‘여자들이 주제파악이 안 되는 이유’의 핵심임. 주제파악이 안 되는 것도 있겠지만, ‘내 상황에 상관 없이 증명할 수 없는 남자는 만날 수 없는’상태인 것이다. 뭐 이게 주제파악이 안 된다는 것과 동일한 말인가.

실제로 남자들의 삶은 결혼을 했냐 안했냐로 단순히 나뉘고 여자들의 삶은 어떤 결혼을 했냐로 복잡하게 나뉘어 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데 ‘결혼 압박’ 대비 ‘결혼의 질에 대한 압박’이 역대급으로 심해서 짝 찾기가 어려운 요즘인 거 것 같다. 그래서 레드필이니 알빠노메일같은것도 유행하나 봄.

여자들은 왜 주제파악이 안될까? 잘난 남자만 찾는 여자들의 심리